"제주 앞바다 생전 처음 보는 물고기" 미기록 어종 '줄줄'

역대 최장 71일 고수온 특보
수온 상승에 따른 바닷속 생태계 변화 두드러져

  올해 제주 바다는 그야말로 펄펄 끓어올랐다.

 지난 7월 24일 제주 앞바다에 발표된 고수온 특보는 71일간 이어지다 10월 2일에야 해제됐다.

 성게에 알이 차지 않고, 양식 광어는 대규모 폐사했다.

 올해 들어 8월까지 제주지역 6개 수협 위판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18.5%(5천136t) 줄어들었다.

 위판액은 23.3%(593억4천200만원) 감소했다.

 제주 바다는 현재 어떤 변화를 겪고 있는 것일까.

 스킨스쿠버 교육을 받고 장비를 갖춘 초보 다이버 기자가 14일, 15일, 19일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제주 앞바다에 들어가 직접 생태계 변화를 관찰했다.

 ◇ 태평양 살던 물고기가 제주 앞바다에

 제주도 남쪽 보목포구에서 약 1㎞ 떨어진 섶섬으로 향하기 위해 배에 몸을 실었다.

 서귀포 앞바다 문섬, 범섬과 함께 천연기념물이자 유네스코 생물 보전권 지역으로 지정된 섶섬은 섬 주변 바다에서 한국 미기록종과 새로운 종이 계속해서 발견되고 있다.

 배를 타고 5분도 채 되지 않아 다이빙 포인트인 속칭 '중간 한개창'에 도착했다.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날씨였다.

 입수 당시 서귀포시 기온은 21도 내외였지만, 수온은 이보다 한참 높은 26도 안팎을 보였다.

 함께 배를 탄 다이버들은 평년보다 수온이 3∼4도가량 높다고 입을 모았다.

 물에 들어가서도 추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섬 벽을 끼고 수심 5m가량 내려갔을까. 바다보다 더 푸른빛을 가진 파랑돔 무리가 가장 먼저 초보 다이버를 맞았다.

 지난달 범섬에서 본 자리돔과 물고기지만, 파란빛을 내뿜는 것만으로도 왜인지 자리돔과는 달리 신비스러워 보였다.

 파랑돔 무리 중에는 새끼손톱보다도 작은 치어도 떼로 있었다.

 2000년대 초반 제주 서귀포 해역에서 간혹 관찰되기 시작됐던 아열대 어종인 파랑돔은 해를 거듭할수록 그 수가 늘더니 2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서귀포 해역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어종 중 하나가 됐다.

 파랑돔은 바닷물 온도 상승으로 인한 서식과 분포 변화가 비교적 뚜렷한 어종으로, 조사·관찰을 통해 기후변화를 파악할 수 있다고 판단되면서 지난해 4월 해양수산부가 지정한 기후변화 지표종 23종 가운데 하나로 선정됐다.

 또 다른 기후변화 지표종인 거북복도 자신의 존재를 알아주기를 바라는 듯 노란빛을 뽐내며 파랑돔 사이를 유유히 유영했다.

 입수 후 조금 여유가 생기자 시야도 넓어졌다.

 하지만 상상했던 형형색색 연산호나 조류에 나풀거리는 미역, 모자반 등은 눈에 띄지 않았다.

 돌 틈에서 뻗어나온 녹조류가 몸을 휘감을 것 같았던 바닷속은 잿빛 모래를 배경삼아 알록달록한 물고기만 눈에 들어왔다.

 잠시 한눈판 새 동행한 전문가가 손짓하며 모랫바닥에 붉은색 빛을 쐈다.

 빛이 비치는 곳을 자세히 보니 모래와 색이 비슷해 하마터면 그냥 지나칠뻔했던 '노랑점줄망둑'(가칭)이 움직였다.

 이 물고기는 다른 나라에서는 서식이 확인됐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공식 이름을 갖지 못한 아열대 어종이다.

 이외에도 청줄모래꽃동멸(가칭)과 청황문절과 미기록 어종, 망둥이와 미기록 어종 등 여러 국내 미기록 어종을 만났다.

 이들 물고기는 연구진이 표본을 채집해 어떤 어종인지를 확실히 하고, 관련 논문을 써야만 이름을 갖게 된다.

 열대 어종도 눈을 사로잡았다.

 파랑돔에 이어 인도양과 태평양 열대·아열대 산호초 지역에서 주로 서식하는 검은줄꼬리돔 치어들도 떼를 지어 힘차게 나아갔다.

 서부와 중부 태평양의 열대 해역에서 주로 서식하는 청황문절은 꼬리지느러미 끝에 길게 늘어진 실 같은 4개 줄기를 살랑거리며 유영했다.

 청황문절과 비슷한 해역에 서식하는 두동가리돔도 노란색 등지느러미를 펄럭이며 모습을 드러냈다.

 일본 남부와 인도양, 태평양 열대 해역에서 주로 서식하는 흰점꺼끌복도 포착됐다.

 간에 강한 독을 가졌을 뿐 아니라 피부에서도 독을 분비하는 것으로 알려져 주의가 필요하지만, 다행히 이날은 양쪽에서 뻗쳐오는 카메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유영하며 흔쾌히 촬영에 응했다.

 바위 아래에는 열대성 청줄돔을 사이에 두고 양옆으로는 아열대성 어종인 아홉동가리와 점동갈돔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아직은 낯선 이름이지만, 이미 제주지역 수산물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는 아열대 어종인 호박돔과 잿방어, 아홉동가리도 만나 볼 수 있었다.

 호박돔과 잿방어, 아홉동가리는 제주 연안에서 많이 보일 뿐만 아니라, 크기도 우리가 식탁 위에 흔히 올리는 고등어나 옥돔보다도 커 국립수산과학원이 꼽은 '이미 활용되고 있거나 앞으로 활용할 수 있는' 아열대 어종 5종에 이름을 올렸다.

 ◇ "바다 환경 변화 체감…생태계 조사 나서야"

 제주 서귀포 섶섬과 문섬, 범섬을 중심으로 다이빙해온 전문가들은 "아열대 어종 치어 떼 출현 빈도가 높아지는 게 느껴진다"며 "제주해역에 정착하는 열대·아열대 어종이 늘고 있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또 겨울철 수온이 예년처럼 내려가지 않으면서 떠나야 할 물고기가 떠나지 않고 남아있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20일 제주 바닷속 생태변화를 조사하는 민간 단체 '물고기 반'에 따르면 2021년 4월부터 최근까지 섶섬 앞바다에서 관찰된 물고기는 270여 종으로, 이 가운데 국내 미기록 어종은 50여 종에 이른다.

 20년 넘게 서귀포 앞바다에서 스킨스쿠버 다이빙을 해온 시민과학자 김상길 굿다이버 대표가 이끄는 '물고기 반'은 2021년 4월부터 매달 이틀씩 서귀포 앞바다에 입수해 어종 변화를 기록하고 있다.

 과학 자문은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 김병직 박사가 맡았다.

 김병직 박사는 "섶섬 주변 바다에서 관찰된 어종의 구성만 보면 10마리 중 7마리 이상이 아열대성으로 매달 새로운 얼굴들이 보인다"고 말했다.

 '물고기 반' 김 대표는 "열대·아열대 어종 개체수가 빠르게 늘어나는 것이 피부로 느껴질 정도"라며 "실제 최근 조사 구역 내 파랑돔 개체 수를 740마리까지 세다 포기했을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반대로 예전에는 겨울만 되면 허리춤까지 빽빽하게 자라 마치 정글 같았던 모자반이 최근 들어서는 거의 없다시피 한다"며 "모자반 같은 해조류가 사라지면 공생하던 물고기도 살 곳을 잃게 되고, 결국 바다 생태계가 변하게 되기 때문에 종뿐 아니라 주변 생태계 변화를 전체적으로 조사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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