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둘기" 유해동물이니 맘대로 죽여도 된다?

비둘기, '평화의 상징'서 '유해야생동물'로 추락
20세기 국가행사 동원되며 개체수 급증→'도심 골칫거리'
잔혹 학대시 동물보호법 위반…지자체 포획 허가 받아야
당국, 개체수 관리 나서…'비둘기에 먹이 주지 말라'

 도심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비둘기.

 한때 '평화의 상징'으로 각광받았지만 현재는 환경부가 지정한 대표적인 유해야생동물이다. 사람의 생명이나 재산에 피해를 준다는 이유다.

 비둘기는 어쩌다 위상이 추락했을까.

 ◇ '청소의 대상' 된 비둘기

 18일 동물단체 동물자유연대에 따르면 청소용역업체 직원 A씨는 지난 6일 오전 서울 지하철 1호선 구일역 역사에서 비둘기 두 마리를 죽였다.

 동물자유연대는 목격자들이 '탕'하는 소리를 들었다는 점에서 A씨가 새총과 같은 도구를 활용했고, 바닥에 떨어진 비둘기를 주워 2차 살생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또 구일역 폐쇄회로(CC)TV에는 A씨가 역사 내 쓰레기통에 비둘기 사체 두 구를 버린 뒤 수건을 가져와 바닥에 묻은 비둘기의 혈흔을 닦는 모습이 담겼다고 전했다.

 동물자유연대는 지난 9일 A씨를 야생생물법 위반 등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공개적인 장소에서 동물을 해한 점, 같은 종류의 동물이 보는 앞에서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점, 확인 사살로 목을 비튼 점 등을 토대로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도 제기했다.

 야생생물법에 따르면 유해야생동물을 포획하려는 자는 지방자치단체의 허가를 받아야 하며, 정당한 사유 없이 죽음에 이르게 하는 학대를 해선 안 된다.

 동물자유연대는 "A씨는 이른 시간 이용객이 많은 지하철 플랫폼에서 비둘기 두 마리를 쐈고, 그들 중 한 마리는 살아있었음에도 목을 비틀어 끝내 죽음에 이르게 했다"며 "비둘기가 현재 유해조수로 지정된 동물이긴 하지만 일반 시민이 직접적인 상해를 입히거나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는 엄연히 금하고 있다"고 밝혔다.

 ◇ '닭둘기' 전문 퇴치업체까지 등장

 유사한 일은 두달 전에도 벌어졌다.

 지난 3월 인천 부평경찰서는 백운역 인근 길가에서 살충제가 섞인 생쌀을 모이로 뿌려 비둘기 11마리를 죽게 한 50대 여성 B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B씨는 청소용역업체 직원으로 환경 정화작업을 하다가 쌀에 살충제를 섞어 바닥에 뿌린 것으로 조사됐으며, 경찰에 "비둘기가 청소하는 데에 방해돼서 살충제를 먹게 했다"고 진술했다.

 2022년 10월에는 비둘기를 발로 차는 영상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남성이 경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

 이 남성은 비둘기를 세게 걷어차는 모습과 함께 '제기차기'라는 자막을 달아 공분을 샀다.

 이들처럼 학대·살생에 이르지 않더라도 비둘기에 대해 시민들은 대체로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다.

 직장인 이모(33) 씨는 "인간이 버린 것을 먹거나, 인간의 토사물을 먹는 것을 보다 보니 더럽다는 이미지가 생겼다"며 "길에서 보면 자연스럽게 피하게 된다"고 말했다.

 많이 먹어 닭만큼 커진 비둘기에 대해 '닭둘기'라는 멸칭이 붙은 지는 오래이며, 비둘기를 퇴치하는 전문 업체까지 등장했다.

 비둘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하면서 이를 상징물로 여기던 지방자치단체 및 기업들이 휘장을 변경하기도 했다.

 ◇ '평화의 상징'이라며 날리더니…

 도심 속 흔히 볼 수 있는 집비둘기는 절벽 동굴이나 틈새에 둥지를 틀던 '바위 비둘기'에서 유래했다.

 학계에서는 아파트 베란다, 건물 틈새, 다리 교각 등 도심 속 건축물이 야생 환경과 유사한 특징을 갖고 있어 비둘기가 쉽게 적응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천적이 없고 음식물 쓰레기 등 먹이가 풍부하다는 점도 빽빽한 빌딩숲에 집비둘기가 터를 잡게 만들었다.

 그러나 국내 집비둘기 개체 수가 급증한 결정적인 요인은 20세기 국가적 행사에 비둘기가 대규모 동원되며 방사됐기 때문이라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국립생물자원관이 2016년 발표한 '멸종위기 양비둘기 보전 및 증식·복원 연구'에 따르면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각각 약 3천마리의 비둘기가 평화와 화합을 상징하는 퍼포먼스의 일환으로 방사됐다.

 14·15대 대통령이었던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 취임식에는 각각 1천400마리, 1천500마리의 비둘기를 날려 보내는 행사가 펼쳐졌다.

 1985년부터 2000년까지 대통령배 고교 야구 개막식, 한민족체전 등 크고 작은 행사에서 비둘기를 날리는 퍼포먼스가 모두 90차례나 있었다는 기록도 존재한다.

 이처럼 반복적인 방사는 집비둘기 개체 수 증가의 계기가 됐고, 결국 2009년에는 유해야생동물로 지정되기에 이르렀다.

 서식 밀도가 너무 높아 분변과 털 날림 등으로 문화재가 훼손되고 건물이 부식되는 등 재산·생활상의 피해를 준다는 이유였다.

 ◇ "개체 수 급증의 책임 인간에 있어"

 전문가들은 집비둘기를 인간이 만들어낸 환경에 적응한 생명체로 봐야 한다고 짚었다.

 유해조수라서 맘대로 죽이거나 학대해도 된다고 생각하면 안되며 인도적 관점에서 개체 수 관리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유정칠 경희대 생물학과 명예교수는 "개체 수 급증의 책임이 인간에게 있는 만큼 이들과의 공존을 고민하는 책임도 인간에게 있다"며 "가장 먼저 먹이를 주지 않는 방법이 있다"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전문가도 "비둘기는 잘못이 없다"며 "둥지를 틀고 번식할 수 있는 환경을 계속 만든 것이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당국도 이런 인식 속에서 개체 수를 통제하려는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각 지자체는 주요 공공장소에 '비둘기에 먹이를 나눠주지 말라'는 내용의 현수막을 부착하고 있으며, 서울시는 오는 7월부터 광화문광장과 한강공원, 서울숲 등지에서 비둘기에 먹이를 주다가 적발되면 최대 1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할 예정이다.

 유 교수는 "끊임없이 개체 수가 늘어난다고 그들이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것이 아닌 만큼 지역에 따른 적절한 개체 수 관리는 필요하다"며 "그렇다고 무분별한 포획을 해도 된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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