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상처, 학폭] ② '진짜 사과'가 치료법…용서도 강요 말아야

가해자 처분은 '종결' 아냐…피해자 회복, 재발 방지가 궁극적 목적
피해 회복 돕는 지원책 태부족…피해자 부모가 '알아서' 해야

 학교폭력 피해자와 관련 전문가들은 가해자의 '진심 어리고 진정한' 사과만이 치료법이라고 한목소리를 낸다.

 피해자들이 '왜 하필 나여야만 했는지'를 곱씹으면서 과거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건 가해자에게 어떤 사과도 받지 못한 탓이라는 것이다.

 징계·처벌을 강화하는 정책 못지않게 상처가 덧나지 않도록 피해자를 돌보는 게 최우선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 학폭 종결하려 징계 급급…피해자 회복 뒷전

 가해자에 대한 징계는 필요하지만 엄벌주의가 만사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학폭 사건이 징계로 마무리된다는 인식 탓에 사건을 종결하는 데 급급한 나머지 징계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피해자의 치유는 뒷전이 되기 십상이다. 서류로 오가는 징계 절차 속에서 피해자는 잊힌다.

 처벌의 궁극적 목적은 사건 종결이 아니라 '재발 방지'인데도 처벌의 수위가 강해질수록 역효과가 커지는 현실도 살펴볼 문제다.

 학폭 처분을 정시모집 전형에도 반영하는 등 징계를 강화하게 되면 정순신 변호사 사례처럼 가해자도 불이익을 최소화하려고 불복 소송전에 나설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

 소송에서 '사과'는 패소와 직결되므로 소송전에 돌입하면 가해자의 진짜 사과는 불가능한 얘기가 된다.

 징계가 단순 절차로만 자리 잡을 경우에 대한 걱정도 나온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기계적인 분리와 징계 절차 착수만으로 문제가 해결됐다는 착시에 빠지게 될 수 있다.

 이현숙 아동·청소년성폭력상담소 탁틴내일 대표는 "피해자가 어떤 상황인지 보기도 전에 징계 절차만 가동하면 피해자가 소외될 수 있다"며 "피해자 입장에서 피해자가 원하는 게 뭔지를 충분히 듣고 섬세하게 조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진정한, 그리고 진심어린 '진짜 사과' 받고 싶어"

 이 대표는 '진짜 사과'라는 표현을 썼다.

 그는 "진정한 회복을 위해서 필요한 건 진짜 사과와 재발 방지 대책"이라며 "이게 제대로 되지 않으면 (피해자가) 과거에 머물러있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사과받는 입장이 되면 형식적인지, 진심인지 느낄 수 있다"며 '진심'을 거듭 강조했다.

 실제로 현장에서는 초기에 가해자와 가해자 부모의 진심 어린 사과를 받고 치유했다는 사례도 많다는 것이다.

 학교폭력 피해자 윤은새(21)씨 역시 "가해자가 진짜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윤씨는 현재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에서 주관하는 대학생 멘토링 프로그램 '우리 아이 행복 프로젝트'에 멘토로 참여하고 있다.

 그는 "제 멘티 청소년도 '가해자가 사과했으면 좋겠다'고 말하곤 한다"며 "그러면서도 진심을 담은 사과가 아니라면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사과가 또 다른 폭력을 낳거나 피해자에게 용서를 강요하는 건 아닌지도 살펴볼 대목이다.

 이 대표는 "학교폭력예방법에 가해자가 피해자에 사과하게 하는 규정이 있는데 이게 오히려 피해자를 힘들게 하기도 한다"며 "용서를 강요해선 안 되므로 현장에서 어떻게 조치할지 전반적으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가해자가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면 피해자에게 서둘러 용서를 강요하지 말고 이를 받아줄 수 있도록 시간을 줘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 피해자 지원 '태부족'…부모가 직접 알아봐야

 

 현재 학폭이 발생하면 학교장은 가해자와 피해자를 즉시 분리하고 사안을 조사해야 한다. 사안 조사와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 심의엔 7주가 필요한데 그사이 피해자는 사실상 방치된다.

 그나마도 학폭위에서 가해자 처분이 나오면 사안이 종결됐다고 보고 교사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경우도 많다. 이런 현실에선 피해자의 상처 치유와 회복은 개인에 떠넘겨질 수밖에 없다.

 가해자는 규정대로 '죗값'을 치르면 정상으로 복귀할 명분이 생기지만 진짜 사과도 못 받은 채 심신에 큰 상처를 입은 피해자의 삶은 여전히 수렁 속이다.

 현행 지원책을 알지 못하거나 절차가 까다로워 혜택을 받지 못하는 피해자도 부지기수다.

 학교폭력예방법에 따라 학폭위에서 확정된 피해자는 심리 상담, 조언을 지원받을 수 있고 부모가 직접 또는 학교를 통해서 학교안전공제회에 치료비 보상을 요구할 수도 있다.

 공제회는 치료비 등을 심사해 피해자에 선지급 후 가해자 측에 구상권을 행사한다. 치료비는 2년간 지원되며 필요한 경우에는 최대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다.

 제도는 그럴싸하지만 피해자가 학교폭력관련기관장의 의뢰 확인서 등 각종 서류를 갖추는 게 현실에선 쉽지 않다. 학교에서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기도 한다.

 피해자 전담 심리상담 기관을 찾아 일정을 잡는 것도 피해자 측의 몫이다. 학교폭력 피해만을 전담해서 상담하는 기관도 적고 정보도 충분치 않아 피해자 부모는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비공식적으로 경험담을 들어 상담을 준비한다.

 김소열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 사무국장은 "완전한 회복이 쉽지 않은 만큼 피해자가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회복하는 다양한 치유 프로그램이 많이 개발돼야 한다"며 "피해자가 고통과 감정을 호소하고 표출할 수 있는 창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학교폭력 예방대책을 손질하면서 학교와 교육청에 '피해학생 전담지원관' 제도를 도입하고 피해자 지원기관을 올해 303곳에서 내년 400곳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청소년 상담복지센터, 스마일센터, 복지·정신건강 관련기관 등 관련 정보를 주기적으로 안내하겠다고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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