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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달라도 아프면 제때 치료받는 세상 만들고 싶어요"
"어디서 태어났든, 어떤 언어를 쓰든, 언어 장벽 없이 아프면 제때 치료받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요." 지난 2일 한국경제 주최 '2026 KT&G 국제 대학생 창업교류전'에서 금상을 차지한 미얀마 유학생팀의 눼이자치(24) 팀장은 수상 소감을 이같이 말했다. 한국에 거주하는 약 300만 명의 다문화인과 250만 명의 외국인이 언어 장벽으로 인해 겪는 고질적인 의료 서비스 소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얀마 유학생들이 AI 기반 다국어 헬스케어 앱 '힐릭스'(HEALIX)를 선보여 주목받고 있다. 영어를 비롯해 미얀마·중국·일본·태국·베트남·몽골어 등 7개 언어를 지원하며, 병원 예약부터 진료 결과 해석까지 의료 서비스의 전 과정을 하나의 플랫폼에서 통합적으로 안내한다. 연세대 언더우드 국제대학에서 창의기술경영을 전공하는 눼이자치 팀장은 "의료서비스는 개인의 불편함을 넘어 생명과도 직결된 중요한 문제"라며 힐릭스 개발 이유를 설명했다. 힐릭스 아이디어의 씨앗은 그가 한국에서 직접 겪은 경험에서 싹텄다. 그는 "유학 생활을 하면서 외국인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이 언어 장벽 때문에 아파도 병원에 혼자 가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어 소통이 가능해도 전문적인 의학 용어 앞에서는 장벽을 느끼고, 결국 병원에 가는 것을 포기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주변 외국인 친구들이 병원에 가야 할 상황에서 눼이자치 팀장이나 한국어가 능숙한 다른 외국인 친구에게 동행을 부탁하는 일이 잦았고, 이 경험이 앱을 개발하게 된 출발점이 됐다. 앱 이름 '힐릭스'(HEALIX)는 DNA 구조인 'Helix'(나선)와 'Healing'(치유)이라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그는 "의료 서비스는 인간의 본질적인 권리이며, 언어나 출신국에 상관없이 누구나 이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힐릭스가 기존 번역 앱과 가장 뚜렷하게 차별화되는 점은 의료 특화 자연어 처리(NLP) 기술이다. 눼이자치 팀장은 "일반 번역 앱은 일상 언어 데이터 세트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의료 상황에서 잘못 번역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일반 번역 앱은 "콕콕 쑤신다", "사르르 아프다"와 같이 통증의 양상과 강도를 섬세하게 표현하는 한국어 의태어를 구분하지 못하고 모두 동일한 '복통'(stomach pain)으로 번역한다는 것이다. 반면 힐릭스는 의료 데이터 마이닝을 통해 통증의 정도와 성격까지 파악해, 환자의 표현을 의사가 정확히 진단할 수 있는 의학적 언어로 매핑한다. 번역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AI 번역 후 시스템 내에서 다시 원문으로 재번역하는 '역번역 검증'(Back-Translation Verification)을 도입했다. 또한 통합의학언어시스템(UMLS) 같은 공인된 의학 용어 표준 및 실제 병원 진료 기록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해 신뢰도를 높였다. 특히, 의료 특화 사전을 탑재해 증상과 진료과를 자동으로 인식하는 기능도 갖췄다. 번역 기능 외에도 힐릭스는 대면 상담을 선호하는 사용자를 위해 전문 통역사를 즉시 예약할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한다. 보험 적용 범위와 의료 비용을 사전에 추정할 수 있어 재정 부담도 줄일 수 있다. 단순 번역에 그치는 기존 서비스와 달리, 의료 보험과 연동된 예상 진료비 안내, 커뮤니티 기능까지 하나의 플랫폼에서 제공한다는 점이 핵심 차별점이다. 눼이자치 팀장은 "이번 대회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수상 발표가 아니었다"며 "대회가 끝난 후, 다른 팀 학생들이 다가와 '이 앱이 출시되면 꼭 써보고 싶다'고 말해줬을 때"라고 했다. 그는 "저희가 연구하고 만든 것이 이 앱이 실제로 사람들에게 필요한 서비스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고, 그 순간 꼭 상용화해야겠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팀이 대회를 통해 가장 중점을 둔 가치도 이와 맞닿아 있다. "이 앱이 소외된 다문화인과 외국인 환자들의 삶에 실제로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는지, 그리고 실제 비즈니스로서 지속 가능한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것이다. 현재 힐릭스는 웹사이트와 애플리케이션 프로토타입이 개발된 단계다. 향후 상용화를 위해 엔지니어링 팀 구축과 투자 유치, 전략적 파트너십 확보를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첫 번째 타깃은 한국 내 외국인 유학생이며, 이후 다문화인, 외국인 노동자, 의료 관광객으로 점차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병원 측과는 외국인 친화 병원을 중심으로 한 전용 예약 시스템 제휴를, 보험사와는 외국인 전용 보험 상품의 보장 범위를 앱 내에서 실시간 확인하고 즉시 청구할 수 있는 API 연동 모델을 구상 중이다. 그는 2022년 7월 서울여대 어학당을 통해 처음 한국 땅을 밟았다. 이후 2023년 연세대에 입학했다. 창업에 대한 관심은 미얀마 재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보기술대학교에 다니며 친구들과 창업 공모전에 참가하고 다양한 포럼에 참석하면서 기술과 창업에 관한 관심을 키웠다. "어릴 때부터 직접 비즈니스를 만들어 성공시키는 것이 꿈이었다"는 그는 현재 그 꿈을 힐릭스를 통해 현실로 만들어가고 있다. 그의 최종 목표는 단 하나다. "단기적으로는 한국 내 외국인 의료 접근성을 실질적으로 높이는 것, 장기적으로는 이 모델을 글로벌로 확장해 의료 형평성(Health Equity)에 기여하는 플랫폼이 되게 하는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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